5월부터 진행 중인 ​기획전인데, 미루고 미루다가 전시 끝나기 이틀 전에야 관람하러 갔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지정된 보물과 국보를 전시하는 자리이다.

국립중앙박물관 114호에서만 열리는 전시로 규모가 크지는 않다.




노란색으로 써진 유물들을 기획전에서 전시하고있다.




수월관음도.

박락이 심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버드나무 가지가 꽂혀있는 정병은 색이 바래서 잘 안 보인다ㅠ

전반적으로 바다를 그린 면적이 좁은 편이라고 생각된다. 

선재동자말고도 용왕과 용녀가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아는데 용왕과 용녀는 보이지 않고 있다.





관음보살의 의상 디테일.​



관음보살의 얼굴 디테일.

관음보살의 전신은 금니로 채색되었다.

다른 수월관음들에 비해서 나이가 많아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화불이 있고, 머리 장식이 꼭 백의관음의 것 같다??






나무 판넬에 양면으로 그림이 그려져있고, 다리가 달려있다.

정식 명칭은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라고 한다.

앞뒤로 그림이 그려져있으니까...헤헤...




노영 필 아미타구존도. 패넣은 실제로 보면 크지 않다. 엽서만한 크기 정도 된다.

 

아미타불과 팔대보살이 있는데, 지물을 토대로 팔대보살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다고는 해도.....박락이 심해서 잘 모르겠다ㅠㅠ 

그리고 테두리 부분을 금강저로 그려 공간을 구획해두었다. 

금강저가 밀교 계통에서 쓰이는 불구인데,  교토국립박물관에서 보았던 만다라 도식에서도 비슷하게 금강저로 테두리를 표현되어있었다. 그냥 장식적인 의미로 그린 것은 아닐까?




노영 필​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아미타구존도의 반대편에 그려져있다.

담무갈보살은 금강산에 살고 있는 보살이라던데. 고려의 태조가 담무갈보살을 만났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노영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뒷쪽이 담무갈보살, 앞쪽이 지장보살인 것으로 알고 있다.





디테일.

담무갈보살에게 절하는 태조이다. 이상한 점이라면 太가 아니고 大로 써있다.




노영. 엎드려서 지장보살에게 절을 하는 것 같다.



이상한 점이라면 어떻게 고려의 왕과 일개 화가의 복장이 똑같을 수가 있는가.

'대조'와 '노영'은 후대의 누군가 임의로 적었을 가능성은 없는가?




고려 말기의 보살상.

티벳불교의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허리도 잘록하고 영락이나 보관도 화려하다.​




고려후기 불감 안에 봉안된 불상들.

가슴팍에 卍자가 새겨진 것도 있다.

위의 세 개는 불감의 앞쪽에 배치되어있었다고 한다.

앙련과 복련을 겹쳐서 만든 좌대, 잘록한 허리, 보살들의 영락은 역시나 티벳불교의 불상 양식과 관련있다.



19세기의 병풍식 지도.

전주 완산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양쪽 옆에는 완산과 관련된 내용들이 기록되어있다.

관서 지역의 병풍식 지도​는 이번 학기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전라도의 것은 처음 본다.






16세기의 소상팔경도.​


















정선의 풍악도첩.

이번 학기에 그토록 많이 언급된 1711년의 신묘년 풍악도첩이다.


















봉수당진찬도.

이번 학기에 ​의궤와 궁중기록화에서 표현된 꽃을 공부했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당판의 앞쪽으로 무희들이 배를 중심으로 돌면서 춤을 추고 있다.

배 위에 있는 무희의 옷은 무관의 옷 같다? 그리고 왜 배 위에 용이 그려진 깃을 달았을까?

무슨 춤을 추고 있는지는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각종 의궤들.

PDF로 볼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크고 두껍다.

색감도 화려하다!





이번 주말을 마지막으로 전시가 끝나므로 다시 보러갈 수는 없겠지만.....도판으로만 보던 것들을 실물로 볼 수 있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갓 공부를 시작했으니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작품을 실물로 볼 때와 도판으로 볼 때, 슬라이드로 볼 때 서로 느낌이 매우 달라서, 동일한 작품이라고 매치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또 사소하게 생각해서 보고 지나갔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긴다거나 눈이 가는 경우도 있다.

사실 사진을 열심히 찍지 않은 이유는 이미 나에게 고화질 도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흐흐...정선의 그림은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의외로 본관의 특별전시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획전.


한글 제목이 '프랑스 근현대 복식, 단추로 풀다'이고 영문 제목이 'Unbuttoning the French Fashion from the 18th to the 20th Century'이다. '풀다'라는 단어로 제목을 멋지게 지었다.


요새 전시들이 그렇듯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고 그 사이를 통시적으로 구성하였다.

18세기, 19세기, 20세기로  나누어 구성하여서 아주 명료하다.

다양한 공예의 재료와 기법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관람하면 유익한데,  아쉽게도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단추의 다양한 재료와 패션과 관련된 시각문화의 양상을 제시한다. 인상깊었던 것은 다양한 재료를 나열하고 전시장에 조명이 달린 돋보기를 달아두어 관람객이 자유롭게 재료를 확대해서 볼 수 있었던 점이다.


 흥미롭게 보았던 제작기법은 자개와 칠보였다. 특히 자개는 동아시아 공예에서 시작된 공예기법인만큼 시누아즈리 및 자포네스크와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의식적으로 동아시아의 시각문화를 모방하고 재해석하는 시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회화사 전공자의 입장에서는 회화의 모티프가 공예로 적용되는 방식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적인 자극을 얻을 수 있는 즐거운 기회였다.



전시실 내부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어 리뷰를 남길 마음이 별로 없었지만, 아주 인상적이어서 뭐라도 기록한다.


이 전시는 대부분의 고고학, 약간의 미술사(정확히는 공예사)와 관련이 되어있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유물을 연대순으로 잘 정리를 해놓았고. 연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적 사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가를 곱씹을 수 있다.

고고학 쪽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보아도 잘 모른다. 다만 어떤 물성을 가진 재료에 문자언어를 기록하는가에 따라서 후대에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변화할 수 있음을 느꼈다.



공예사적으로는 다양한 기법, 재료를 확인할 수 있었고 실제로 한국의 공예품과도 아주 가까운 경우들-사진의 금제 귀고리-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미술사적으로는 불교미술의 시원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양식, 도상 등을 찾을 수 있었다. 연대가 올라갈수록 고대 이집트와 유사하고 점차 고대 그리스와 유사하다가 이슬람 미술이 전개되면서 고유의 지역성을 갖추는 양상을 보인다.

이슬람 미술이 얼마나 '미술사'적인 중요성을 가지는지 나는 (배우지 않았기에) 잘 모른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1. 세계 미술사의 맥락에서 이슬람의 미술이 배제되어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2. 이슬람 미술은 인간이나 동물같은 구상적 요소를 의식적으로 배제하기 때문이다.



옷주름과 인물의 포즈에 주목해야한다. 삼곡자세라고 부른다. ​





제우스의 도상이 표현된 금화.

타출기법을 사용하였다.




온갖 보석 및 준보석으로 만든 목걸이. 

진주가 눈에 띄는데 그것은 페르시아만 인근에서 진주를 많이 채취하였다는 점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머리 장신구인데 귀에 걸쳐서 금사를 머리 뒤로 드리웠을까? 

위의 목걸이와 세트였을 것 같기도 하다.​




돋을새김한 부조..

독수리 모티프가 어디에서 쓰인것인지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 조로아스터교나 페르시아 등지에서 사용된 것이겠지만....

태양을 표현한 방식이 특이하다. 초기의 불교미술에서 표현되는 광배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소가 이집트 신화의 하토르 여신의 도상으로 표현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하토르 여신이 아닌 것이 자명해보이는 이유는 비석에 표현된 소가 숫소이기 때문이다.




징징이의 집 같이 생겼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고대의 인물상처럼 생겼다.

경직되어있다.

큰 돌덩어리를 조각해서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팔다리가 몸통에서 완벽하게 떨어져있도록 깎아내지를 않았다. 왜?



뿔달린 양 두 마리가 제단 양 옆에 앉아있다.

불교미술에서 법륜이 좌대에 올려져있고 그 양옆으로 사르나트를 상징하는 사슴이나 사자후​를 의미하는 사자가 있는데, 표현의 측면에서는 동일하다.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조각들.

가운데의 몽둥이를 든 남자는 몽둥이의 형태를 제외하고는 초기 금강역사의 도상과 동일하다.​




그리스적인 요소가 강하다.​




은제 생활기.​



디오니소스가 그려진 벽화조각.​



그릇의 형태가 고대 그리스 것과 유사하지만 유약이 녹색빛을 띄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금제귀걸이. 

누금기법을 사용하였다. 




도자기와 유리그릇



금사와 은사로 수를 놓아서 만들었다.​




청화 안료를 ​풍부하게 사용하였다.

동아시아의 청화백자와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특이한 양상.









구상의 표현이 의식적으로 지양된다는 점은 필연적으로 추상적인 패턴과 서체의 장식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장식성의 표현에 대한 욕구가 어떻게든 표출된다는 점에서는 다른 미술 및 공예의 맥락과 함께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금과 은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종교미술이 얼마나 깊은 신앙심과 정성을 요구하였는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한편으로 서체는 동아시아 회화의 감식에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데, 이슬람미술에서도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퀄리티를 보장하는 중박의 기획전인만큼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슬람 미술은 어릴 때 아야 소피아 내부밖에 본 적이 없는데, 다양한 맥락과 물성을 가진 미술품을 실견하기에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한편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다양한 모티프나 재료가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데, 그 점을 부각하였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전시개념과 전시구성을 보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관람자 입장에선 아쉽게도 크게 와닿지가 않았다. 애초에 컨셉이 최근의 한 지역의 유물을 통시적으로 구성한 전시이다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의 두번째 전시 주제인 도시 속 미술

조선 후기 및 근대의 사람들은 누가, 어떻게 미술품을 향유하였는가 알 수 있다.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는데 그래도 몇몇개를 살펴보면.



<삼국지연의>를 도해한 병풍의 일부.

19세기의 것이라고 한다.

사진은 도원결의를 하는 장면이닼ㅋㅋㅋㅋㅋㅋㅋ제사를 지내는 얼굴이 뽀얀 아저씨가 유비일테고, 뒤돌아 서있는 두 아저씨 중에 수염이 단정하고 까무잡잡한 아저씨가 관우, 하얀 눈알만 동그란 새까만 아저씨가 장비일 것 같다. 


종이나 비단에 채색을 하는 방법과는 다른 기법으로 제작된 회화들이 있었다.

장식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들이 주로 유통되었으므로 독특한 제작기법을 모색했던 것 같다. 

사진은 지직화라고 부른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색종이로 직조물을 짠 것이다.

옆에는 낙화라고, 종이를 인두로 지져서 그린 그림이 있었다.



​<호피장막도>, 19세기


주인이 없는 사이에 표범가죽으로 된 커튼을 살짝 걷어보았는데 온갖 신기한 물건이 있다.

마저 보이지 않는 방안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더 있겠지? 하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주인은 안경을 벗어두고 잠깐 자리를 비운 상황을 연출했다.

공작 깃털, 산호, 생황, 석류, 마작패, 골동품 같아보이는 청동기와 도자기 같은 것들이 놓여있다.

이런 류의 책가도는 트롱프뢰유 기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눈속임 기법으로 정교하고 사실적이게 그린 신기한 물건들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겠는가.

    


안경과 안경집.

대원군의 초상화에도 책상 위에 안경이 올라와있다.​




진귀한 물건을 수집하고 싶었던 욕심이 드러나는 또다른 작품들.


<백선도>

19세기 말의 것. 독일에서 왔다.

시장 유통을 위해서 밑그림을 그려놓고 대량제작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는 밑그림만 남아있다고 한다.

중국풍의 그림들이 그려져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사인물도인 것 같다.

사진에는 없지만 감지에 금니로 그린 듯한 부채그림도 있다.

피규어 수집가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중요한건 부채들이 하나의 주제가 되고 또 그 부채의 그림들이 하나의 주제가 된다는 점인 것 같다.



<백납병>

멀리서 찍느라 잘 보이지 않는데, 비단 위에 다양한 그림이 붙어있는 것처럼 그려놓았다.

화풍과 주제도 제각각이다. 

벽에 포스터를 붙여놓는거나 사진들을 걸어놓는 것들이 떠오른다.




사진에는 없지만 

공예품, 특히 새로운 스타일의 도자기가 제작되었고 장식적인 성격의 병풍이 제작되었음도 알 수 있다.

조희룡의 매화도를 비롯해서 장승업의 그림도 몇 점 있다. 많이 예쁘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도 있다. 


18세기의 서화 수집가 김광국이라는 사람이 모은 서화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네덜란드의 동판화 옆에 '태서화법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하면서 먼 곳에서 그려진 그림이라고 설명이 써있다. 어떻게 서양의 동판화가 조선으로 유입될 수 있었는지도 알아보면 아주 좋을 것 같다.


근대회화는 잘 모르겠다. 인상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김주경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세잔이 떠올랐다.


미술품 시장에 대한 연구도 능력이 된다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사적 연구가 선행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오른쪽 건물인 특별전시실에서 한다.

입장료는 5천원.

조선 후기부터 근대의 미술을 당시의 사회경제적인 상황과 연관지어 해석한 전시이다.

미술사의 사회사적 분석과 아주 밀접한 전시라는 것.

사회사는 내가 아주 관심있어하는 연구방법이고 근대의 동아시아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니 당연히 다녀왔다.

사실 두번째 갔다오는거라능.

지난번엔 요녕성 박물관에서 온 <청명상하도>와 <고소번화도> 진작을 보려고 급하게 다녀왔고 오늘은 복제품을 보고 왔다.



전시는 (중박에서 하는 특별전이 거의 그렇듯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전시실이 두 개라서 그런 것 같다. 허허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겠지만 첫번째 전시실은 '미술 속 도시'에 대해서 두번째 전시실은 '도시 속 미술'에 대해 다룬다.

즉 첫번째 전시실에서는 도시의 모습을 다룬 회화가 주를 이루고 두번째 전시실은 당시 도시인들이 향유하던 미술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있다.


첫번째 전시실에서는 18세기 조선의 <태평천하도>, 중국 명나라의 <청명상하도>와 청나라의 <고소번화도>, 일본 18세기 에도시대의 <낙중낙외도>가 있는 부분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비슷한 시기 동아시아에서 가지고 있었던 '평화롭고 풍요로운 도시의 모습'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청명상하도는 북송대 장택단의 것부터 시작된 것으로 청명절의 번화한 개봉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이후에도 계속 그려졌다. 지금 전시에 온 것은 명나라 직업화가 구영의 것이다. 

곰돌이 생일에 중식을 먹으러 갔는데 벽에 청명상하도의 일부분이 다닥다닥 복사+붙여넣기되어있는걸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어쨌든, <청명상하도>와 <고소번화도>를 볼 때 유의해야할 것이 몇 가지 있다.

두 작품 모두 시장을 그린 부분의 디테일을 잘 살펴보면 당시의 시장에선 무엇을 사고 팔았는지 알 수 있다.

도자기 그릇, 놋그릇, 책, 비단, 가죽신발, 간식거리, 그림, 국수, 인형같은 것들이 있었던듯.

<고소번화도>에는 香水浴堂라는 간판이 있던데 그건 목욕탕일까?

한편으론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 다소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청명상하도>에는 한족의 옷을 입고 있는데 비해서 <고소번화도>의 사람들은 모두 호복을 입고 있다.

채색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고소번화도>를 그린 궁중화원 서양이 활동할 때면 이미 서양화법이 궁정화원에서 사용되었다. <고소번화도>가 1759년에 제작되었고 낭세녕이 1766년에 죽었으니까. 낭세녕은 중국 궁정에서 활동한 이탈리아인 화가이다.  


 




두번쨰 전시실로 이동하면 처음에 <태평성시도>를 미디어 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여준다.

5분정도의 영상이고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림의 디테일들이 움직이는 (...) 것이다.

요새 유행하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 

고양이가 뛰어다니는 장면은 마음에 들었다.


<태평성시도>와 관련해서 궁금했던 점은 조선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가 중국과 닮아있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의 의복도 조선인이 입었음직한 것이 아니기도 하고, 건축물 역시 그러하다. 드문드문 그려진 파초는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중국 강남 지방의 그림에서나 그려지는 것이다. 물소도 중국에나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물소는 16세기부터 도식적으로 그려졌으니 잘 모르겠다.

건축물들을 그린 것은 아마도 자를 대고 그린 계화일 것으로 보이고, 음영법을 사용한 것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원근법도 잘 적용되어있다.




'도시 속 미술'은 다음 기회에...




1688년 제작, 높이 13.3미터
3층의 불교조각실, 2층의 불교회화실이 내부의 계단으로 연결되어있어서 대형 탱화를 걸어놓는 큰 벽이 있다. 역시나 거기에 걸어놨다. 괘불이 벽 높이보다 더 긴 것 같던데...17세기 말에 만들어진 것치고 상태가 좋다.

석가불의 협시보살이니 문수와 보현이 있다. 보현보살의 지물은 연꽃이 아니라 여의인 것 같다.
나머지 보살 여섯명은 식별할 수가 없다.






범천과 제석천이라고만 써있고 각각 인물이 누군지 알려주지 않는데...석가불의 왼쪽에 있으므로 제석천이다. 이마에 눈이 하나 더 달려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시바는 눈이 세 개라고 잘 알려져있지만, 인드라도 그렇게 표현되는지는 몰랐다. 더 찾아봐야할듯




전시를 보러가야겠다고 마음만 먹다가 또 기간을 놓쳐서 못 보게 될 것 같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짊어지고 중앙박물관으로 갔다.

일본 중궁사의 목조반가사유상과 우리나라 국보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이 전시되어있다. 특히 중궁사의 목조반가사유상은 처음으로 사찰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기획전시실 공간 중 앞부분에 파티션을 설치해서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두 보살상이 마주보고 있는 구도로 배치되어있다.

사실 포스터같은 것에 사용된 사진 등에는 두 보살상의 크기가 비슷하게 나와있지만...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 훨씬 작다. 중궁사 반가사유상의 좌대만한 것 같다.

국보 83호는 옷주름이 음각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중궁사 반가사유상에 비해서는 중국화된 의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옷자락이 삐죽 뻗어있는 모습이나, 양쪽 어깨를 덮는 형식의 의복이 그러한 이유라고 할 수 있을 법하다. 오히려, 국보 78호가 형식적인 측면에서 더 유사하지 않을까 싶지만...국보 78호는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과의 유사성이 더 강조되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중궁사 반가사유상은 흥미로운게, 다리 길이에 비해서 좌대가 높기 때문에 한쪽 발이 공중에 뜨게 되는데, 발 아래에 연꽃 모양의 발받침을 만들어놓았다. 광배가 보살상과 바로 연결된 것은 아니고, 광배를 대나무 모양의 긴 막대에 달아서 보살상 뒤에 위치하게끔 하였다. 광배도 섬세하게 조각되어있고, 화불들이 달려있었다. 광배는 호류지 소장 금동삼존불입상의 협시보살들의 광배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일본 불교조각들이 그러하듯이 선적인 느낌이 강하다.


사진촬영은 안된다.
6월 12일까지. 월요일에도 전시를 운영한다.








​<보이지 않는 가족>전, 두 번째 방문.

지난 주 금요일에 전시를 보러 갔을 때는 너무 몸이 안 좋아서 작품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참 푹 쉬고 나니까 오늘은 그나마 맑은 정신으로 전시를 볼 수가 있었다.


전시 팜플렛을 배포하지 않고 있길래 가져오지 못했다.

오늘은 안내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니 거기서 달라고 해야 주더라;;

그것도 딱 한 사람 당 한 부씩...



도슨트도 있었지만 듣지 않았다...세션 별로 몇몇 개의 작품만 간략하게 설명하고 지나가는 듯.


전시는 총 다섯 개의 세션으로 구성되어있다.

'신화를 해체하기-지배적 표상들과 위대한 남성들', '중립 안으로-사진의 0도', '보이지 않는 이들-카메라 루시다의 사진첩', '자아의 허구-친밀함, 자서전, 전복', '에필로그-과거를 바라봄'.

이 중 마지막 에필로그를 제외한 세션들은 서울시립미술관 2층과 3층에서 진행되고 있고.

에필로그 세션은 서울시립미술관의 뒷문으로 나오면 있는 일우스페이스에서 진행된다.

일우스페이스는 다녀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첫 번째 세션인 '신화 해체하기'에 심혈을 기울인 것 같았다.

이 전시실은 빨간색 벽면을 사용했지만, 나머지 공간들은 화이트큐브를 그대로 두었더라.

요새 전시를 다녀보면 주로 세션에 따라 색깔을 다르게 벽면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아서 살짝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더라...

나중에는 많이 피로했다ㅠㅠ

 



아네스 조프레이, 일시정지, 2000

Agnes Geoffray, Pause, 2000,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 collection


사진 속 남성들의 표정과 여성들의 표정을 비교해보자.





 

로베르 두아노, 모나리자, 1947

Robert Doisneau, La Joconde(Mona Lisa), 1947,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 collection


이 각도 쯤에 설 때 두 작품을 가장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모나리자에 대한 열망을 재생산하는 것은 누구인가? 또 모나리자로부터 저만치 떨어져 구경해야하는 것은 누구인가? 



​두 번째 세션.

두 번쨰 세션의 작품들은 이미 첫 번째 포스트에서 몇 개 소개했다.


마르셀 브로타에스, 비 (텍스트를 위한 프로젝트), 1969

Marcel Broodthaers, La Pluie (Projet pour un texte), 1969,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 collection




유튜브에 마침 영상이 있어서 링크를 첨부한다. 상태가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약 2분 정도 분량의 작품이다.






세 번째 세션.

이쯤되면 다리가 아프다ㅠㅠ

전시장 중앙에 미디어 작품도 하나 있는데, 자살한 작가의 언니와 자기 자신에 대한 내러티브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미디어 작품이 서너 개 있는데, 사실 너무 길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도 않았고, 만약에 그랬대도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재미있는 사진을 하나 고르자면.

액자 유리에 비친 길버트와 조지의 작품도 보인다.


행크 윌리스 토마스, 스모킹 조는 마마가 아냐, 1978-2006

Hank Willis Thomas, Smokin' Joe Ain't J'mama, 1978-2006, Franc Aquitaine collection



the Unbranded: Reflections in Black by corporate America 연작의 작품 중 하나.







'보이지 않는 이들-카메라 루시다의 사진첩' 세션. 

팜플렛을 인용하자면, 

'바르트는 소수자들-거리의 아이들, 유랑자, 지적 장애인, 노예였던 사람들, 사형수, 동성애자, 예술가의 어먼, 여성시인-을 그의 사적인 이미지의 역사 안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이렇게 주류가 아닌 비가시적인 인물들로 이루어진 사진첩을 만들어 그들을 조명했다.'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바르트의 이야기이지만, 어쨌든 전시는 바르트의 사진론에 기반하여 기획되었으니...

이 세션에서는 소수자에 대한 시선을 다루고 있다. 마음에 들었던 두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다소 성적인 표현이 있는 작품들이라서...거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존 코플란스, 자화상: 다리와 엄지 손가락을 함께, 1985

John Coplans, Self-portrait; Legs and Hands Thumbs Together, 1985,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 collection​


http://www.mocp.org/detail.php?t=objects&type=browse&f=maker&s=Coplans%2C+John&record=13

http://www.tate.org.uk/art/artworks/coplans-self-portrait-hands-spread-on-knees-p11673/text-summary

작가에 대한 페이지..


작가는 자신의 몸을 통해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다.

위의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글을 잘 읽고 오면 맥락이 이해가 되지 않을까싶다. 특히 테이트의 글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캡션에는 '관객은 기괴함과 조각적인 것 사이를 오가는 남성의 나체와 시간의 흐름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작가의 친밀함에 적용된 객관성을 인지할 수 있다'라고 써있는데, 이게 관객에게 얼마나 유용한 감상의 실마리가 될지 잘 모르겠다. 캡션이 별로...좋지 않은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




아리안 로페즈-후이치, 맨하탄 비너스 1-3, 1994

Ariane Lopez-Huici, Venus de Manhattan 1-3, 1994, Centre national des arts plastiques collection​


http://www.kirili.com/lopezhuici/

작가 홈페이지


왜 비너스인지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조각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작가 홈페이지에서 포트폴리오를 보니 살이 많이 찐 여성들을 주로 모델로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여기에 대해서 작가 스스로가 남긴 코멘트가 있다.


I'm often asked why I choose the type of model I do. Why these? My body type is small and slender, whereas Aviva, Dalila, and Holly are Rubenesque. For me, at least, there's a large element of the unknown in the act of creating. If I really knew the answer, I wouldn't photograph them. My choice of models depends on a variety of circumstances: how we meet, our desires, possibilities that attract and intrigue, the transgression of normative boundaries, the confidence one creates in order to persuade someone to pose. What I photograph is the irreducible mystery of my models.

These models are heroes of our time. Through their talent, their strength and courage, they enlarge the boundaries of our emotional and visual world. Their beauty emerges from the poetry of their imperfections. They take part in the trance, in the ritual of bodies in weightlessness. El Duende. Life itself. The imperfection is the art of freedom opposed to the fascism of Apollonian art. I love Goya, Dziga Vertov, Maya Deren, Antonin Artaud .




<보이지 않는 가족>전보다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특별전>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개 1층의 전시를 보고 2층과 3층에서도 전시를 하니까 '이게 뭐지?'하고 구경을 오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개별 작품들의 퀄리티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책에서 봤을 법한 이름의 작가들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바르트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대강 알아도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으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얼마나 유기적으로 전시를 구성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표한다.

어찌되었든 전시는 일요일에 막을 내린다.


서울시립미술관(SeMA) 2015-2016 한불 상호 교류의 해와 롤랑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CNAP)와 아키텐지역 현대미술기금(Frac Aquitaine)이 공동 주최하는 <보이지 않는 가족>전을 개최한다.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와 프락 아키텐의 소장품 200점 여 점으로 구성된 본 전시에는 1930년대 이후부터 소장된 워커 에반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윌리엄 클라인, 다이안 아버스, 제프 쿤스, 신디 셔먼, 소피 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등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이 포함된다. 이는 현대 사진 및 미술 속에서 바르트의 광범위한 영향을 확인하는 동시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공공예술기관인 CNAP, FRAC의 사진 컬렉션의 주요 작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상가 롤랑 바르트는 파리에서 뉴욕근대미술관(MoMA)의 세계순회 전시 《인간가족》전을 관람한 후 이 전시가 제시하는 인류라는 상상적 공동체를 비판하며 오히려 비가시적이면서 주변화된 존재들을 주목함으로써 현대 사회 전반에 내재한 신화적 요소들을 해체한 바 있다. 또한 그는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위인이 아닌 약자에게, 집단보다는 개인에게, 서사적 역사보다는 일화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가족과 성을 이루는 사회적 규범들을 해체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과 일우스페이스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는 롤랑 바르트의 영향을 받은 1960-70년대 이후 현대 사진가와 미술가들로 구성된 4개의 섹션-신화의 해체, 중립 속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 자아의 허구-을 통해 사회적으로 비가시적인 인물들의 초상을 새롭게 조명한다. 한편, 일우스페이스는 1955년 《인간 가족》전을 상기시키는 작품들을 통해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섹션으로 강한 대비를 선사한다

《보이지 않는 가족》 전에서 소개되는 사진작품은 근대기 사진과 영화의 시작과 발전을 일궈낸 프랑스 예술의 저력을 확인하는 자리이자 현대미술과 사진의 연결 지점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나아가 행복한 탄생, 근심 없는 어린 시절, 직장 생활, 사랑과 결혼, 전쟁과 죽음 등의 보편적 과정으로 설명되어온 유사 인문주의적인 ‘인간 역사’를 해체하고,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인류 공동체의 한 자리를 부여하는 재현의 정치학을 통해 지금, 여기의 세계에 대해 숙고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전시내용-      



서울시립미술관과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보이지 않는 가족>

다음주 일요일인 5 29일까지 한다.

1층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특별전을 하고 있다. 마틴의 엉덩이가 인상적이었다.

 

본 전시는 롤랑 바르트의 영향을 받은 현대의 사진 및 미술로 구성된 것인데...

나는 바르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난감했다.



레안드로 베라, <로봇 자화상> 연작

 

http://www.leandroberra.com/autoportraits-robot/

 

작가는 모델들에게 (경찰에서 주로 사용한다는) 초상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얼굴을 표현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모델들의 사진과 병치하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두 사진을 비교하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수반될 것이다- 작업을 했다고.



지아니 페테나, <기억의 풍경>, 1987

 

http://www.giannipettena.it/italiano/opere-1/inst-landscapes-of-memory-1987/

http://static.naver.net/blank.gif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는 알겠는데, 캡션의 설명은 다소 불친절한 것 같기도 하고...

'플렉시글라스-투명한 합성수지를 말한다고 한다- 조각들은 작가의 유년시절의 산마루를 연상시킨다', 'http://static.naver.net/blank.gif이 설치 작업은 기억과 상상 속 장소들에 대한 알레고리로서 유동적이고 추상적이며 명상적인 장소를 만들어낸다.'  같은 캡션의 서술을 참고하여 느낀 점이라면

 

저 플렉시 글라스의 모습이 산을 떠올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작가가 어린 시절 살았던 공간에서 볼 수 있었던 산의 모양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

다만 작가의 관념 속에 남아있는 유년기의 산이 저러한 인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관념은 작가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것일 수도 있고,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서 얻어진 이미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플렉시글라스 조각의 형태를 통해 산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에서 궁금한 점은 이것이 어떻게 알레고리로 작용할 수 있는가인데,

통상적으로 알레고리가 일종의 은유로 여겨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플렉시글라스는 산에 대한 은유인가? 유년기의 기억에 대한 은유인가?

전자는 다소 부당해보이는데, 플렉시글라스 조각의 '형태' 산마루의 '형태'의 유사성을 근거로 둘을 연관짓는다면 은유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후자는 너무나 자의적이기 때문에 관람자가 유추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작가와 작품, 관람자가 유리될 수 있으므로 부적절하다.

 

알레고리에 대한 의문은 미뤄두고 그래서 저 작품이 어떠한 것을 함의하는가에 대해 다시 고민하자면,

이번에는 알레고리 대신에 기호로서 기능하는 ''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플렉시글라스와 그 주변의 모래는 (아무 정보도 주어지지 않은관람객의 입장에서는 단순한 기호로만 작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과 상상 속 장소' '유동적이고 추상적이며 명상적인 장소'는 산이 기호로 작용하였을 때 더 매끄러운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레리 블랑, <흑인 여성 II>연작, 2008

 

 http://valeriebelin.com/

작년 여름에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유럽현대미술전에도 발레리 블랑의 사진이 왔었다.

내가 보기에는 세 모델이 동일한 인물 같은데...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작가 홈페이지에 가도 이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2001년에 제작한 Black Women 연작이 여러 명의 흑인여성의 정면상을 다룬 것이었고, Transexual 연작이 여러 명의 트렌스젠더의 정면상을 다룬 것이었으면,

2008년의 작품은 (홈페이지에는 2006년 작품으로 되어있다내가 보기에는 한 명의 흑인 여성모델을 통해 연작을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맨 왼쪽의 사진이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은 화장법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세 모델이 각각 다른 인종의 사람들인 것 같다고 이야기한 것 같기도 하고.

서로 다른 피부색, 서로 다른 화장법으로 표현된 동일한 인물이 왜 다른 인물로 느껴지는가는 진지하게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요새 몸도 마음도 많이 피곤해서그런지 전시를 보면서도 생각이 매끄럽게 되지 않았다.

워낙에 사진은 나에게 낯설다보니 해석을 못 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는 (상업전시는 논외로 하고) 퀄리티가 아주 좋다.

포스팅을 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찾아봤는데무료라서 추천한다는 글들이 많아서 안타깝기도 하고.

다음주에 전시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은 2016년 5월 24일에 네이버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편집한 것이다.

티스토리로 블로그를 옮기는 과정에서 예전의 포스트를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의 포스트에서 절반 정도의 작품을 추려내고, 이미 코멘트를 달아놓은 작품들만 먼저 공개하였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가족> 전의 리뷰, 그리고 개별적 작품에 대한 코멘트는 여러 번 나누어 포스팅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