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 2016
아담 드라이버에게 치여서 <패터슨>을 보고 왔다.
"이 한 편의 영화로 당신의 하루가 아름다워질 거에요"라는 문구와 다르게 불안한 영화였다.
패터슨씨가 갑자기 라이트세이버를 꺼내서 살림살이를 박살낼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다.
로라의 시크릿파이를 먹는 패터슨 부부
방울양배추와 체다치즈를 넣은 파이라니;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패턴은 강박적으로 등장한다. 로라의 옷, 샤워커튼, 로라가 산 기타, 로라가 패터슨에게 도시락으로 싸준 컵케익, 로라가 장터에 팔려고 만든 컵케익, 머그컵, 주방과 집안의 가구들, 벽과 문... 패터슨의 반응을 보면 로라의 강박적인 취향에 대해 불만이 없지는 않은 것 같다.
패터슨은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옆 의자에 단정하게 갠 옷을 챙긴다. 아침은 혼자 작은 컵에 담아 우유에 불린 시리얼을 먹는다. 그 동안 로라는 자고 있다. (도시락은 언제 싸주는걸까) 도시락 가방을 들고 일터로 가서 버스 운행을 시작하기 전에 시를 쓴다. 집에 돌아와서는 비좁은 지하실에 앉아서 시를 쓴다. 집안은 흑백의 패턴으로 표출되는 로라의 공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하실만큼은 유일하게 패터슨만의 공간이다. 가뜩이나 덩치 큰 패터슨이 지하실 안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작은 책상과 공구, 시집, 거기에 사람 한 명이 앉으면 빈틈이 없는 이 비좁은 공간은 패터슨의 버스 조종석과 같을지도 모른다. 패터슨의 창작은 대부분 두 비좁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시를 적어놓은 비밀노트를 지하실에 놓는다는 것을 보면 대체로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또다른 강박은 반복성이다. 패터슨의 강박은 반복성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패터슨과 로라의 일주일을 보여준다. 또한 패터슨이 출근하는 5일은 거의 동일한 하루가 반복된다. 패터슨에게는 스마트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전화하는 법은 안다.) 밤에는 자야한다고 티비를 보지 않는다. (패터슨이 티비를 보는 장면 역시 나오지 않았던듯하다)
이러한 반복성 안에서도 변칙성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로라는 패터슨의 반복적인 삶에서 예측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패터슨이 집을 나와서 로라와 떨어져있는 동안도 여러가지 '변칙성'이 발현된다. 시를 쓰는 어린 여자아이, 고장난 버스...패터슨이 퇴근하고 나서 저녁에 늘 들리는 술집에서도 늘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다. 개를 묶어두고 바에 앉아 맥주를 한 잔 마시는 행위는 반복되지만, 바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늘 다르다. 술집 안에서의 사건과 로라의 재미있는 행동은 모두 '변칙성'을 표상하지만 패터슨의 반응은 술집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만큼은 로라의 행동들과는 다르게 적극적이다. 심지어 똑같은 말이더라도 로라가 집안에서 했던 것에는 무관심한데 비해서 술집 안에서는 정서가 표출되는 반응을 보인다.
반복성에 대한 강박은 결국 주말에 사단을 일으킨다. 어쩌면 패터슨이 수첩을 가지고 지하실 위로 올라왔다는 것부터 반복성이 파괴되는 것을 암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개가 수첩을 찢어버린 것이 패터슨에게는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로라는 패터슨에게 '주말에 비밀노트의 내용을 복사해놓을 것'이라고 강요에 가깝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패터슨은 내켜하지 않았고, 결국 평소에 패터슨을 질투하던 개가 패터슨의 노트를 갈갈이 찢어버리면서 시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로라의 바람과 다르게 누구도 패터슨의 시를 볼 수 없게 되었다.
패터슨은 일본인 시인을 만난다. 거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나타나서 선문답같은 이야기를 하더니, 아하! 하고는 새로운 노트를 주고 떠나간다. 아하!
패터슨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패터슨은 다시 강박적인 반복성을 지속할 수 있을까? 새로운 노트에 쓴 시는 다음과 같다. (극 중에서 패터슨이 쓰는 시는 론 패짓이라는 시인이 쓴 것이다)
The Line
There’s an old song
my grandfather used to sing
that has the question,
“Or would you rather be a fish?”
In the same song
is the same question
but with a mule and a pig,
but the one I hear sometimes
in my head is the fish one.
Just that one line.
Would you rather be a fish?
As if the rest of the song
didn’t have to be there.
패터슨은 왜 '물고기'만이 떠오른다고 했을까? 물고기는 노새, 돼지와 어떻게 다른가? 할아버지가 불렀다는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Swinging On A Star"이다. 해당 노래에서 물고기에 대한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A fish won't do anything, but swim in a brook A fish won't do anything, but swim in a brook
He can't write his name or read a book He can't write his name or read a book
And to fool the people is his only thought And to fool the people is his only thought
Though he's slippery, he still gets caught Though he's slippery, he still gets caught
물고기는 사람을 기만할 생각 밖에 없고 미끌거리지만 (다루기 힘들지만) 결국에는 잡히게 될 처지이다. 패터슨이 물고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을 그 노래의 물고기와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터슨은 앞으로도 시를 쓸 것이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패터슨은 언젠가 들키게 될 것을 알면서도(혹은 이미 들켰을지도 모른다) 누구를, 무엇을 기만하려고 한 것일까?
이전의 노트에 있던 시 중 대부분은 로라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었다. 패터슨이 모는 버스의 광고판에는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다면) DIVORCE-$299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어쩌면 패터슨과 로라의 알콩달콩해보이는 결혼생활은 거짓일지도 모른다. 장터에서 컵케익을 팔아 대박이 나면 유명해질 것이라고 들떠하며, 컨트리 가수가 되어서 내슈빌에 진출하겠다는 로라와, 현대의 매체와 단절된 삶을 살고싶어하는 패터슨이 어떻게 서로를 '맞춰'가며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에게 <패터슨>은 잔잔한 일상, 사랑, 행복을 담은 영화가 아니었다. 패터슨과 로라에 의해 표현되는 일상 속 반복과 변화에 대한 강박적인 지향과 지양, 그 사이에서 나타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선인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국립중앙박물관, 2017
5월부터 진행 중인 기획전인데, 미루고 미루다가 전시 끝나기 이틀 전에야 관람하러 갔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지정된 보물과 국보를 전시하는 자리이다.
국립중앙박물관 114호에서만 열리는 전시로 규모가 크지는 않다.
노란색으로 써진 유물들을 기획전에서 전시하고있다.
수월관음도.
박락이 심한 편은 아니다.
그러나 버드나무 가지가 꽂혀있는 정병은 색이 바래서 잘 안 보인다ㅠ
전반적으로 바다를 그린 면적이 좁은 편이라고 생각된다.
선재동자말고도 용왕과 용녀가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아는데 용왕과 용녀는 보이지 않고 있다.
관음보살의 의상 디테일.
관음보살의 얼굴 디테일.
관음보살의 전신은 금니로 채색되었다.
다른 수월관음들에 비해서 나이가 많아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화불이 있고, 머리 장식이 꼭 백의관음의 것 같다??
나무 판넬에 양면으로 그림이 그려져있고, 다리가 달려있다.
정식 명칭은 '노영 필 아미타여래구존도 및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라고 한다.
앞뒤로 그림이 그려져있으니까...헤헤...
노영 필 아미타구존도. 패넣은 실제로 보면 크지 않다. 엽서만한 크기 정도 된다.
아미타불과 팔대보살이 있는데, 지물을 토대로 팔대보살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다고는 해도.....박락이 심해서 잘 모르겠다ㅠㅠ
그리고 테두리 부분을 금강저로 그려 공간을 구획해두었다.
금강저가 밀교 계통에서 쓰이는 불구인데, 교토국립박물관에서 보았던 만다라 도식에서도 비슷하게 금강저로 테두리를 표현되어있었다. 그냥 장식적인 의미로 그린 것은 아닐까?
노영 필 고려 태조 담무갈보살 예배도.
아미타구존도의 반대편에 그려져있다.
담무갈보살은 금강산에 살고 있는 보살이라던데. 고려의 태조가 담무갈보살을 만났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노영이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뒷쪽이 담무갈보살, 앞쪽이 지장보살인 것으로 알고 있다.
디테일.
담무갈보살에게 절하는 태조이다. 이상한 점이라면 太가 아니고 大로 써있다.
노영. 엎드려서 지장보살에게 절을 하는 것 같다.
이상한 점이라면 어떻게 고려의 왕과 일개 화가의 복장이 똑같을 수가 있는가.
'대조'와 '노영'은 후대의 누군가 임의로 적었을 가능성은 없는가?
고려 말기의 보살상.
티벳불교의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허리도 잘록하고 영락이나 보관도 화려하다.
고려후기 불감 안에 봉안된 불상들.
가슴팍에 卍자가 새겨진 것도 있다.
위의 세 개는 불감의 앞쪽에 배치되어있었다고 한다.
앙련과 복련을 겹쳐서 만든 좌대, 잘록한 허리, 보살들의 영락은 역시나 티벳불교의 불상 양식과 관련있다.
19세기의 병풍식 지도.
전주 완산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양쪽 옆에는 완산과 관련된 내용들이 기록되어있다.
관서 지역의 병풍식 지도는 이번 학기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전라도의 것은 처음 본다.
16세기의 소상팔경도.
정선의 풍악도첩.
이번 학기에 그토록 많이 언급된 1711년의 신묘년 풍악도첩이다.
봉수당진찬도.
이번 학기에 의궤와 궁중기록화에서 표현된 꽃을 공부했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당판의 앞쪽으로 무희들이 배를 중심으로 돌면서 춤을 추고 있다.
배 위에 있는 무희의 옷은 무관의 옷 같다? 그리고 왜 배 위에 용이 그려진 깃을 달았을까?
무슨 춤을 추고 있는지는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각종 의궤들.
PDF로 볼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크고 두껍다.
색감도 화려하다!
이번 주말을 마지막으로 전시가 끝나므로 다시 보러갈 수는 없겠지만.....도판으로만 보던 것들을 실물로 볼 수 있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갓 공부를 시작했으니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작품을 실물로 볼 때와 도판으로 볼 때, 슬라이드로 볼 때 서로 느낌이 매우 달라서, 동일한 작품이라고 매치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또 사소하게 생각해서 보고 지나갔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긴다거나 눈이 가는 경우도 있다.
사실 사진을 열심히 찍지 않은 이유는 이미 나에게 고화질 도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흐흐...정선의 그림은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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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여름방학 나라여행 첫째날...(1)나라국립박물관
걷는다. 카스가타이샤의 토리이가 보인다.
토리이를 지나서 걸으면
나라국립박물관이 나온다.
예전에 왔을 때는 불교조각관이 전체 보수 중이었고 신관은 왜였는지 문을 닫고 있어서 하여튼 전시를 못 보았다.
신관은 전시준비 중이라 이번에도 휴관ㅠㅠ
이쪽이 불교조각관이다.
팜플렛에 따르면 1894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전시공간이 자잘하게 나뉘어져 있는데 전시실이 13개나 된다.
불상 전시관은 애초에 박물관을 목적으로 지어졌고, 문화역 서울284는 역의 기능을 상시라고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간극이 크기는 한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하나. 일단 서울역은 1925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거의 동시기에 지어졌고, 건축에 활용된 요소가 다르기 때문에 외관은 다르지만 어느정도 느낌이 비슷하다는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박물관쪽이 좀더 고전 건축의 요소를 더 많이 차용하고 있고, 문화역서울284는 르네상스 건축의 요소가 많이 있는 듯.
지금은 명품전 <주옥의 부처들>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한다. 주옥같은 불상이라는거겠지
http://www.narahaku.go.jp/exhibition/2017mei/2017mei_06_chokoku.html
여기에서 전시되고 있는 유물의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전시품목이 또 교체되었다!
그리고 '불상 전시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구석에 별도의 건물이 복도로 이어져있다.
상설전시로 중국 고대 청동기를 전시하고 있다.
천옥박고관의 규모만큼은 아니어도 고대의 중국 청동기가 다수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고대 중국, 그러니까 상나라에서 제사용기로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해서 어떻게 사용했을까?
정(鼎) 안에서 삶아진 사람 머리가 발굴된 적도 있다는데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서 믿을 수는 없지만...충분히 있을 법한 일인 것 같기도 하고. 누가 알려줬으면.
중국 고동기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야 할 점이 많은 것은 맞지만......나중에 더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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